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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 덱 예약 후 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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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0 08:36:28

스팀 덱은 휴대용 게임기인가? 그리고 왜 스팀 덱이어야 하는가?

 

 

스팀 덱을 예약해서 그런지 최근에 스팀 덱 자료도 많이 찾아보게 되고, 스팀 덱으로 뭘 할까 하는 생각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팀 덱에 관한 이야기나 적어 보려고 합니다.

 

 

2022년 8월 4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스팀 덱의 예약 구매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북미, 영국, 유럽에서 스팀 덱 유통을 스팀이 직접 맡은 바와 달리, 이번 한국, 대만, 홍콩, 일본에서의 스팀 덱 유통은 코모도(Komodo Co., Ltd.)라고 하는 다소 생소한 기업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코모도라는 회사가 우리나라엔 생소한 회사이기 때문에, 스팀 덱 예약 웹 페이지에서 망설인 분들이 많을 겁니다. 다행히도 코모도란 회사는 시쳇말로 그리 듣보잡인 회사는 아닙니다. 

 

 

해당 기업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코모도는 2021년 4월 1일에 설립된 일본 회사로 게임과 소프트웨어의 개발, 디지털 배급, 게임 유통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설립일은 꽤 최근이지만, 2013년부터 스팀을 통해 100개 이상의 일본 게임을 배급하였고, 밸브 인덱스와 레이저 블레이드 프로와 같은 게임용 기기를 일본을 포함한 극동 지역에 유통한 이력이 있습니다. 요컨대 코모도란 회사는 게임에 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배급과 유통에도 전적이 있는 회사라는 거죠.

 

 

예구 당시에는 코모도가 무슨 회사인지는 차치하고 예약 순번 밀릴까 하는 걱정에, 스팀 공식 뉴스에 올라온 링크인 걸 확인한 다음 바로 예약을 걸었지만요. 512GB 모델을 예약을 마치니, 세 모델 중 512GB 모델을 고른 게 잘 한 짓인 건가, 그 전에 스팀 덱을 사는 게 잘 한 짓인 건가 하는 의문에 빠지게 되더군요. 

 

 

이런 고민에 빠지게 된 이유는 가격이었습니다. 스팀 덱이 해외에서 예약을 받기 시작할 때, 저는 한국에선 얼마에 팔까 하며, 원 달러 환율을 1100원으로 잡고, 부가가치세 10%를 포함해 스팀 덱의 가격을 계산을 했었습니다. 그 때, 512GB 모델 가격은 78만원 정도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정도 가격이면 살 만하다고 여기곤, 스팀 덱의 한국 출시를 고대하고 있었죠.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기 짝이 없어, 예상했던 가격에 20만원이 더해져 정식 예약이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스위치 두 대를 살 수 있는 가격, 현세대 거치 게임기를 사고 스위치를 살 수 있는 가격, 꽤 좋은 그래픽 카드도 살 수 있는 가격, 이 서슬퍼런 가격 때문에, 제 목전에 놓인 과제는 구실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예약 취소하지 않고, 스팀 덱의 연말 배송을 고대할 구실을 말이죠.  

 

 

먼저 스팀 덱이 좋은 '휴대용' 게임기냐 하는 점을 생각해 봤습니다. 가격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사양 표만 가지고 볼 때 스팀 덱은 만인이 호들갑스레 좋아할 만한 '휴대용' 게임기가 아니라고 생각이 되더군요. 스팀 덱 개발에도 큰 영향을 준 닌텐도의 스위치와 맞대어 살펴보면 그 점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스팀 덱은 스위치보다 길이로는 약 5센치, 높이로는 약 1센치, 두께로는 약 3.5센치 더 크며, 무게로는 약 250g 더 무겁죠. 스위치 이전의 휴대용 게임기가 대부분 200g 내외의 무게를 가진 점을 고려하면, 600g이 넘어가는 스팀 덱은 '휴대용' 게임기의 일종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스위치야 거치기로도 사용할 수 있으니 420g 정도의 무게를 그렇다고 했다지만, 스팀 덱은 두말할 것 없이, 휴대할 만하지 않거든요. 이 점에선 스팀 덱은 좋은 '휴대용' 게임기가 아닙니다. 

 

 

크기와 무게를 따진 후 곰곰히 생각해 보니, 스팀 덱은 '휴대용 게임기'가 아니란 생각이 들더군요. 달리 말하자면, 스팀 덱은 휴대용 게임기의 계보에 속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팀 덱에는 '카트리지'가 없습니다. 닌텐도 스위치, 닌텐도 3DS, 닌텐도 DS, 닌텐도 게임보이, 소니 비타, 소니 PSP, 반다이 원더스완 등등 주요 휴대용 게임기는 전부 카트리지나 카트리지에 준하는 매체를 통해 게임 데이터에 접근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이 '카트리지'는 게임기 개발사가 독점하는 형태, 즉 독자 규격에 따르고 있었죠. 그리고 이 독자 규격이 게임기 개발사의 수익원이었구요. 하지만 밸브에 있어, 스팀 덱의 수익원은 '카트리지'가 아니라, 스팀이라는 게임 디지털 배급 플랫폼 자체입니다. 그리고 스팀은 밸브가 개발한 게임기에 한정되어 있지 않죠. 닌텐도의 '카트리지'는 닌텐도 게임기에서만 작동했지만, 밸브의 스팀은 스팀 덱에서만 작동하지 않습니다. 밸브가 만들지 않은 기기에서도 잘 작동하죠. 그리고 스팀 덱에서도 스팀 게임 이외의 게임을 구동할 수 있죠. 

 

 

스팀 덱은 휴대할 수도 있고, 게임도 할 수 있는 기기이긴 하지만, 시쳇말로 족보를 따지자면 스위치 같은 '휴대용 게임기'는 아닌 겁니다. 이 점은 위키피디아에서도 확인할 수 있죠. 위키피디아에서 스팀 덱은 손에 들고 사용할 수 있는 게임용 PC(hand-held gaming PC)이고, 스위치는 비디오 게임 콘솔(video game console)이니까요. 스팀 덱은 PC란 점에서 비디오 게임 콘솔과 가격을 비교할 녀석이 아니었던 거죠. 그리고 족보는 소니의 바이오 UX 시리즈 같은 UMPC에서 비롯되는 거구요. 

 

 

스팀 덱이 손에 들고 사용할 수 있는 게임용 PC라는 점에서 계속 구실을 찾아보죠. 스위치와의 비교를 계속해 보자면, 스위치에서 할 수 없는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걸 이점으로 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어릴 때 좋아한 '영웅전설 5 : 바다의 함가' 같은 게임도 이불 위에서 스팀 덱으로 플레이 할 수 있는 거죠. 물론 주얼 CD를 구하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스팀 덱의 호환 계층인 프로톤(Proton)이 정상적으로 바다의 함가를 굴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까지 문제는 많겠지만요. 그리고 스위치에서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점이겠죠. 예를 들어, '엘더스크롤 5 : 스카이림'을 한글 패치 모드로 즐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콘솔에 대응한 스팀 덱의 이런저런 이점을 생각하고 있으면, 아야 네오니 GPD WIN 같은 동종의 손에 들고 사용할 수 있는 게임용 PC부터 본격적인 게이밍 노트북이나 게이밍 PC까지 무수한 대체재가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고, 결국엔 '왜 스팀 덱이어야만 하지'라는 문제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게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면, 스팀 덱을 사야 하는 이유는 결국 '어중간함'입니다. PC는 누워서 쓸 수 없고, 노트북은 손에 들고 쓸 수 없고, 손에 들고 사용할 수 있는 게이밍 PC는 비싸고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 지원이 없으며, 모바일 기기에서는 PC 게임이 굴러가지 않고, 비디오 게임 콘솔도 PC 게임을 할 수 없으니 스팀 덱인 거죠. 물론 PC나 노트북처럼 거치해서 사용하기 어렵고 그리고 그보다 성능이 낮고, 동종의 게이밍 PC보다도 성능이 낮고, 모바일 기기에서 굴러가는 모바일 게임이 굴러가지 않고, 비디오 게임 콘솔보다 비싸고 독점 게임이 굴러가지는 않는 스팀 덱이긴 하지만요. 이 어중간함, 좋게 말해 적절함이 스팀 덱을 사는 구실이 될 수 있을 겁니다. 

 

A: 스팀 덱 오는 거 정말 기대된다. 이 게임 전부 할 거야. B: 지금 니 컴퓨터에서 전부 할 수 있는 게임인데.

 

콘솔 게이머 중에는 게임용 PC를 마련하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휴대용 게임기 같은 스팀 덱이 좋은 PC 게임기가 될 수 있겠죠. 물론 스팀 덱에서 굴러갈 정도의 게임은 최근 2~3년 안에 맞춘 컴퓨터에선 대부분 다 굴러가긴 하겠지만요. PC 게이머들에겐 어디서나 게임을 할 수 있는 좋은 게임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게임용 PC가 있다면 스팀 리모트를 통해 휴대폰에서 PC 게임을 할 수 있겠지만요. 이런저런 적절함과 어중간함의 사이에서 번민을 하며, 주문 결제 이메일이 올 때까지 구실을 좀 더 마련해야 하겠네요. 여러분께서 스팀 덱의 예약을 결정하게 된 이유를 알려주시면 그러한 구실 마련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고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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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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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0 09:22:48

확실히 메이저 게임보다 인디나 고전 게임들 돌릴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ㅎㅎ 지금은 좀 복잡하던데 게임 패스도 쉽게 연동되면 더 쓸만할 거 같아요.

WR
4
2022-08-10 17:39:11

확실히 인디랑 고전 게임 굴리는 데 좋을 것 같아요. 자료를 찾아보니, 데스크탑 모드 들어가서 비 스팀 게임 추가한 다음, 프로톤 강제 설정만 원도우 게임이 하면 굴러가더군요. 게임 패스도 데스크탑 모드에서 앱 스토어로 엣지 브라우저 받은 다음 웹 브라우저로 실행할 수 있는 모양이구요. 스팀 덱이 있어도 고전 게임은 시디 구하기가 어려워서 막상 하긴 어렵겠지만, 일단 스팀 덱이 손에 들어오면 인디든 고전이든 이것저것 해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5
2022-08-10 09:28:03

스팀으로 게임 안해서 라이브러리가 거의 비어 있지만… 갖고는 싶네요

WR
3
2022-08-10 17:45:11

스팀 덱에서 스팀 이외에도 오리진, 에픽 스토어, GOG 같은 디지털 배급 플랫폼의 게임을 실행하는 방법이더라구요. 그리고 itch.io 같은 인디 게임 플랫폼에 올라온 게임도 실행 파일을 스팀에 등록하는 방식으로 굴릴 수 있구요. 약간 저작권법적인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에뮤덱이라고 해서 에뮬레이션 기기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더군요. 일단 구하기만 하면 무궁무진하게 사용할 수는 있겠더라구요.

5
2022-08-10 12:08:35

게이밍 노트북과 가성비 대결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네요.

거치형 pc랑 비교는 좀 아닌 거 같고.

물론 누워서 하거나 대중교통 등 좁은 공간에서도 할 수 있는 건 장점이라 이 쪽이 더 취향이긴 한데.

 

결국 소프트파다보니 이후 어떤 소프트가 pc로 풀리느냐에 따라 구매할 거 같습니다.

페르소나 6이 pc로 바로 나온다면 아마 살 것 같네요. 언제나 하고 싶은 게임이다보니.

WR
3
2022-08-10 18:05:46

벤치마크한 기사를 보니, 스팀 덱 성능 자체는 인텔 i3 9세대, NVIDIA Geforce GTX 1050 정도와 비슷하더라구요. 램을 고려하면 기본 사양의 스팀 덱 가격에 스팀 덱 성능 정도의 노트북을 살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물론 512G 모델 정도의 가격이면 노트북 성능이 훨씬 더 좋아지지만요. 최근에 페르소나는 물론이고 여타 콘솔 게임들이 PC에 나오는 걸 보면, 좋아하시는 게임이 나올 때에 맞춰서, 휴대용 PC 게임기 하나 들이셔도 괜찮을 거 같아요. 

2
2022-08-10 21:23:21

어른이들 장난감으로 최곤 거 같아요. ㅎㅎㅎㅎ

WR
3
2022-08-11 04:43:24

주어진대로 이용해야 하는 콘솔 기기와 다르게, 이용자가 활용하는 방식에 따라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어른용 장난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콘솔과 PC의 리모트 플레이 기기로도 쓸 수 있고, 클라우드 게이밍 기기로도 쓸 수 있고, 고전 게임용 에뮬레이터로도 쓸 수 있고, 휴대용으로 쓰다가 독으로 모니터나 티비에 연결해서 쓸 수도 있고, 게임 방송 스트리밍도 할 수 있고... 제대로 공부만 하면 용처가 참 많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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